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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 오행설로 인해 금씨가 김씨로 불리게 된 기막힌 사연



김씨의 계보
  우리나라 성씨는 300 여개로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강(姜), 조(趙), 윤(尹), 장(張), 임(林) 등 10대 성씨가
  우리나라 인구의 60%를 넘는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김씨는  20% 를 넘어 나라 전체 인구의 5명중 1명은 김씨가 되는 셈이다.
 
 
  김수로왕 - 가락국(김해 김씨, 김해 허씨, 인천 이씨)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빛 알에서 아이가 나왔다고 전함
               
  김알지 - 신라(경주 김씨, 안동 권씨, 광주 이씨, 수성 최씨)
             계림(경주의 옛 이름)의 나무 가지에 걸인 금궤속에서 아이가 나왔다 전하며,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금(金)씨로 불렀다
 
  고려 때 까지 金은 김이 아닌 금으로 불려 졌다고 본다.
 
  금나라의 시조 금함보는 고려로부터 온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한다.
  금함보는 신라 제56대 경순왕의 아들이라는 설과 손자라는 설이 존재한다.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양위하였을 때 이에 불복하고 만주로 건너가 왕자중의 한 사람이 금함보로  
  여진을 평정하여 금나라를 세운 것으로 본다.
 
  나라 이름을 금(金)으로 한 것은 두가지 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금함보의 성씨를 나라 이름으로 했다는 것과
  음양오행설에 입각해 송(宋)나라가 목(木) 오행을 가지고 있어 송을 이기기 위해 나무가 무서워하는 쇠금(金)을 사용했다는 설이 있다.
 
  이처럼 고려 때 까지는  김씨를 금씨로 불려진 것이 확인된다고 본다.
 
  그런던 금씨가 이씨조선으로 오면서 갑자기 김씨로 바뀌게 되는 연유는 이성계의
  음양 오행설에 의한 불안한 심리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오행의 상생 관계
  木生火 : 나무(木)는 불(火)을 살리고
  火生土 : 불(火)은 흙(土)의 기운을 살려주며,
  土生金 : 흙(土)은 쇠(金)를 생산해 내며
  金生水 : 쇠(金)는 물(水)을 머물 수 있도록 지지해 주며
  水生木 : 물(水)은 나무(木)를 살린다.
 
 
  오행의 상극 관계
  木剋土 : 나무는 훍의 기운을 해치게 되고
  土剋水 : 흙은 물길을 가로 막아 흐르지 못하게 하며
  水剋火 : 물은 불을 죽이고
  火剋金 : 불은 쇠를 녹여 없애고
  金剋木 : 쇠는 나무를 잘라 죽게 만든다.
 
                
  이성계가 왕권을 찬달하기 위해 내세운 이론이 목자득국(木子得國)이다.
  즉  목(木)과 자(子)를 합한 글자인  이(李)씨가 나라를 얻는다는 이론이다.

  참고로   쇠금(金)자를 쓰고 김으로 읽는 지명도 존재한다.
  김포(金浦), 김천(金泉), 김해(金海), 김제(·金堤) 등이 금포나 금천, 금해,금제가 아닌 김으로 불리는 지명의 사례이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는 또 다시 자신처럼 반란을 획책하지 않을까하는 불안에 쌓이게 된다.
  그 때 나온 이론이 [금극목 : 金剋木]으로 [나무는 쇠를 이길 수 없다]   즉, 이(李)씨는 목(木)의 성질을 가진 성씨인데
  이(李)씨의 나라는 쇠의 성질을 가진 금(金)씨에게 나라를 빼앗긴다는 이론이다.
 
  이는 역모에 해당하는 이론이라 모두 참살하기로 작정을 하였으나 금(金)씨가 전체 인구의 20%나 되므로
  나라 전체를 없애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시도를 못하고 대안을 찾게 된다.
  그 대안이 금(金)씨의 성을 쓰기는 쇠금자로 하되 읽기는 김으로 한다는 특단의 초치라 한다.
  즉 금을 김으로 부르게 되면 [금극목]이 아니라 [김극목]이 되므로 오행의 극한 기운을 상쇠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사상 초유의 창씨 개명이 조선초에 이루어진 결과로 그 이후 금씨는 김씨로 둔갑을 하여 불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 말기 안동 김씨가 50년 이상 세도 정치를 하게된다.

순조가 11세의 어린 나이로 등극하면서 시작된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는 
현종,철종,고종의 대원군이 정권을 잡기까지 50여년간 집권을 하게된다.
안동 김씨에 잘못 보이면 왕족도 죽음이 답이 되었다.

임금의 자리도 안동김씨의 허락이 떨어져야 가능하리만큼 대한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성계의 선견지명인지 끝내 금극목이 되지 않아 역성혁명은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