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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수 -천생연분으로 만난 사이가 원수가 되어 헤어지기까지



[처음 만날때는 천생연분] 
남자든 여자든 배우자와 이별을 하기 위해 만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무구나 다 천생연분인 줄 알았겠죠.
한마디로 말해 지금까지 어디에 있다 이제야 만났을까 싶을 정도로 애착도 가고 사랑스럽게만 느껴집니다.

그렇게 귀하고 소중한 만남의 인연이 시간이 지나면서 간격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때서야 하는 말
[내가 뭐에 씌었었나봐]
아니면 
[그 때는 너무 세상을 몰랐었거든]
등으로 자기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지금 다시 시작하면 그때처럼 실수하지 않고 더 좋은 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대부분 그래서 갈라서기를 서슴치 않고 결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입니다.

[자기 합리화와 자기암시]
이별이나 이혼 등 갈라설 때는 
[어디간들 이 남자 보다 못한 사람 만나려구...]
아니면
[이 여자보다 못한 여자가 어디 있다고...]
하면서 자신있게 남들에게는 쿨하다고 자신의 결단에 동조해 주기를 바라며 갈라서게 됩니다.

[송충이는 어차피 솔잎을 찾게 마련]
그러나, 누구나 자신의 그릇이나 시선에 맞는 사람과 또다시 관계를 맺게 됩니다.
꿈에 그리던 환상이 현실로 다가올 때는 지난 날들이 그리움으로 메아리 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그래서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안타까운 현실도 참으로 많습니다.

이렇듯이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남자보다 여자분들이 월등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남자가 이별을 통보하고 여자가 매달리는 형태였다면 최근은 완전히 반대가 되었습니다.
여자가 통보하고 남자가 이별을 당하는, 다시 말해 남자가 차이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보게되는 세상은 어떨까요?
여자분들의 이별 통보는 냉철한 판단에 의한 새 출발을 위한 방편이 아닌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한마디로 수없이 세뇌되고 학습 되어진 잠재된 의식이 표출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매스컴의 최면술에 걸려] 

무슨말인가요?
우리는 무의식 중에 대중매체의 최면에 걸려들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영화 한편을 보더라도 수도 없는 상스런 욕설이 난무 합니다.
일명 예술과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에 다들 재미삼아 보고 듣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자신도 그 욕설의 단어를 쓰는 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내재된 잠재의식 속에 숨겨진 사나운 기운이 자신도 모르게 발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또 합리화를 하지요.
그 정도는 요즈음 세대에서는 누구나 쓰는 말이라고...

안방 극장인 TV 의 폐혜는 더합니다.
대부분의 시청자가 여자분들임을 감안하여 스트레스를 풀어줄 소재를 찾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수퍼우먼 같은 힘있는 여성들이 남편이나 남친을 우습게 여기는 장면들이 나오게 됩니다.

자연히 남편이나 남친에게 불만이 있던 주부들이나 여성분들은 대리만족의 희열을 느끼게 되구요.
인기에 편성한 매스컴은 정도를 벗어나는 강한 테마로, 남자들을 압도해 여성분들의 갈채를 얻어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그러한 행위가 당연한 것으로 각인이 되구요.

[잠재된 의식이 실력행사로] 
어느날 부부간이나 연인들 사이애 다툼이라도 생기면 그동안 매스컴애서 배운 실력이 나오게 되지요.
그래서 여성분들이 과감히 이별의 선언을 하는 세상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순간 기분이 평생을 후회로]
그러나, 후회를 여자분들이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현장실무에서 상담을 하더라도 더 많은 비율의 여자분들이 지난 인연을 그리워 한답니다.
매스컴에서 잘못 배운 스트레스 해소법이 낳은 결과이지요.,

[참고 지켜내는 자신의 행복] 
모든 것은 상대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으로 생긴 것으로 생각하면 문제는 쉽게 풀려 나갑니다.
섣부른 결단으로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금씩 참고 인내하는 연습이 가정의 평화와 자신의 행복을 지켜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