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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집무실(2)-청와대를 거쳐간 주인공들의 삶

 

1.청와대의 변천사
지금의 청와대는 일제 강점기인 1926년 일제의 총독부 관사로 쓰여지던 것이 그 기원입니다. 해방후는 미군정청으로 사용되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경무대로 이용되고, 6.25전쟁 중에는 조선인민군 청사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퇴각하면서 방화로 소실됩니다.
 
서울 수복후 복구하여 대한민국 정부청사로 사용됩니다. 그 후 중앙청, 국립중앙박물관 등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집권한 윤보선 대통령이 경무대를 청와대로 이름을 바꾸게 되고,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총독부 청사가 완전 해체를 겪게 됩니다. 
 
지금의 청와대는 우리나라의 역사 만큼이나 파란만장한 내력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역사를 가진 청와대이지만, 권력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청와대에서 권력의 중심에 섰던 주인공들이 청와대를 떠나서는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조명해 봅니다.
 
 
2.청와대의 주인들
[일본의 마코토 총독]
청와대 건물의 첫 주인공은 조선총독부의 총독이던 일본의 마코토 총독입니다. 1929년 부터 1931년까지 조선의 총독으로 근무하게 됩니다. 1932년에는 일본의 총리까지 오르지만 1936년 청년 장교들에 의해 살해 됩니다.
 
 
[미군정청 하지사령관]
해방후 미군청청이 청사로 사용하면서 하지중장이 주한미군 사령관 겸 미군정청 사령관으로 근무하게 됩니다. 하지장군은 용감하지만, 국제정세를 이해하거나 대중들을 이끌만한 인물은 되지 못한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군정 이후의 생애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이승만은 초대대통령]
해방과 정부수립이후 이승만은 초대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나, 3.15 부정선거로 4.19혁명이 발생하게 되고, 4월 26일 하야 성명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후 이화장에서 머물다가 5월 29일 아내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하게(요양차?) 됩니다.
 
 
[윤보선 대통령]
1960년 8월 부터 4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이 시기가 제2공화국으로 내각책임제를 실시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때 윤보선은 경무대를 청와대로 이름을 바꾸게 되고, 지금까지 청와대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1961년 5월 16일 군사 구데타로 인해, 1년여를 실권없는 대통령직을 이어가다 1962년 3월 하야하게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
5.16 군사 구데타로 집권한 군부세력은 국회를 해산하고, 헌정이 중단된 상태에서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주도하에 강력한 대통령제로 개헌을 추진합니다. 다음 집권을 위해 3선개헌을 추진하게 되고 이 시기가 제3공화국입니다.
 
이어 계엄령을 선포하여 헌정을 중단시킨 다음,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제4공화국이 탄생하게 됩니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선거를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간접선거체제로 바꾸고, 연임제한도 없애게 됩니다.
 
유신헌법은 3권분립의 의미도 퇴색이 된, 반헌법적인 개헌으로 평가됩니다. 결국, 집집권기간동안 3번이나 개헌을 하면서 집권 연장을 도모하며 1963년 부터 18년간 대통령직을 역임하게 됩니다.
 
긴 재임기간 만큼이나 곡절도 많았습니다. 1974년 8.15 광복절 기념식 행사장에서 박정희를 암살하려던 문세광에 의해 영부인인 육영수가 사망하게 됩니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 부장이던 김재규에 의해 서거를 하게 됩니다.  
 
 
[전두환대통령]
12.12 사태는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전두환, 노태우 등이 계엄사령관이던 정승화를 납치하고, 최규하 대통령을 사임케 한 다음, 정권을 장악한 군사 구데타입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고, 대통령은 7년 단임제 간접선거로 바뀌게 되어 제5공화국이 탄생합니다. 미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ICBM 등, 핵개발관련 국방계획을 취소하게 된 것이 지금 우리나라가 북한의 핵위협을 받게 된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퇴임후가 불안했던 전두환은 1987년 제6공화국 헌법에서, 전직대통령이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을 맡도록 하여 1988년 2월 의장에 취임하게 됩니다. 예전의 상왕 정치와 유사한 제도지만, 동생인 정경환의 비리사건으로 인해 회장직에서 사퇴하게 되고, 노태우 대통령이 자문회의를 폐지해 버립니다.
 
1988년 11월 궁지에 몰린 전두환이 백담사를 찾아 2년 동안 은둔을 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구속되어 내란반란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수감됩니다. 그 후 김영삼 정권말 사면으로 석방됩니다.
 
 
[노태우 대통령]
전두환과 함께 하나회를 조직하여 12.12 군사구데타를 주도합니다. 전두환 정권이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제6공화국이 탄생하지만, 퇴임후인 1995년 11월 구데타의 2인자로 구속되어, 12년 징역형을 확정받았지만, 김영삼 대통령 임기말에 사면으로 풀려납니다.
 
 
[김영삼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은 비교적 큰 문제가 없이 대통령직을 수행했으나, 너무 급한 시장개방으로 인해 한보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고려증권, 한라그룹 등이 쓰러지면서 IMF 사태를 초래하게 되고, 임기말에는 현직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되는 사태를 맞기도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
군사정권의 위협으로 부터 죽음의 강을 건너 권좌에 오른 사람이 15대 김대중 대통령입니다. 전국민 금모으기 운동으로 IMF를 극복하고, 대북화해협력정책인 햋빛 정책으로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하지만, 임기말에 이권개입 혐의로 두아들이 구속되는 불운을 겪게 됩니다.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를 기치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하고 정경유착을 끊는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노무현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좀 더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대통령입니다. 그러나, 2009년 5월 23일, 뇌물사건에 연류되어 검찰수사를 받던 중,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하여 자살하게 됩니다. 
 
 
[이명박 대통령]
현대건설 정부영 회장의 특별한 신임으로 36세의 나이에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현대에서 27년의 직장생활을 한 후 정주영 회장이 도움을 청했으나, 경쟁하는 당인 민자당의 비례대표로 나서게 되어, 현대와는 오히려 대척의 지점에 서게됩니다.
 
서울시장에 당선되어 청개천 복원공사에서 인기를 얻게 되고, 대통령직까지 움켜쥐게 됩니다. 그러나 퇴임후, 뇌물 사건을 비롯환 20여개의 비리혐의로 구속되어, 17년형을 언도받고 복역중에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전대통령의 향수에 젖은 민심을 자극해, 장녀인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러나, 대폭적인 담배값 인상과 세월호 참사 등으로 민심을 잃은 상태에서 국정농단이라는 사건까지 나타나게 됩니다. 
 
결국, 대한민국 최초로 탄핵으로 물러나는 대통령이 되었고, 뇌물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징역 20년을 확정받고 복역하던 중, 2021년 12월 31일 특별 사면으로 풀려나게 됩니다. 더 이상 전직대통령이 수사를 받거나 구속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요.
 
 
[문재인 대통령]
2022년 5월 9일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고향인 경남 양산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2022년 5월 10일 부터 새대통령으로 임기를 시작합니다. 정말 온 국민이 환호하는 성공하는 대통령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또한. 세종로가 아닌 용산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되어, 안타까운 역사를 끊어내는 역할도 해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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